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예레미야
45장“바룩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1. 시작 기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주님께서는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를 경외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지키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하옵소서. 우리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 만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옵소서.
오늘 이 하루, 우리의 남은 평생,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저희들 다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통 204장)
www.youtube.com/watch?v=hFhMsUCA-tQ&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룩을 위로하기 위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관 바룩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의 구전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평안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다른 백성들은 다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바룩의 생명은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 네리아의 아들 바룩 (1-3절)
바룩은 마세야의
손자이며 네리야의 아들입니다. 바룩은 '복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서기로서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로 활동하였습니다. 사역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좋은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크고 중요한 일일수록
좋은 동역자들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우리 사역자들과 성도들은 사역에 필요한 신앙 및 인격과 기술을 익혀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세에게 여호수아가 있었고 엘리야에게 엘리사가 있었고 예레미야에게 바룩이 있었듯이 오늘도 신실하고 좋은 동역자들이 많이 요구됩니다.
예레미야의 절친한 친구이며 그의 서기인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예언의 말씀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야김 제4년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이 바벨론에 패한 주전 605년입니라. 애굽의 패망은 친애굽 정책을 취한 유다 백성들에게 큰 위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성전에서 설교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성전을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서기인 바룩에게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한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기록하고 선포해야 했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당하는 일반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신앙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인의 고통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동체에 대한 애착으로 당하는 고통입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이 당하는 고통은 국가의 운명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국가의 희망적인
내일을 예언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비극적인 운명을 예언하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바룩에게 한층 더 가중된 슬픔은 유다의 절망적인 운명을 기록하고 선포했을 때 나타나게 될 결과입니다.
2) 바룩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4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바룩에게 당신은 세운 것을 헐기도 하시며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룩이 유다의 멸망에 대한 고통으로 좌절
상태에 빠진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는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상심한 바룩에게 제일 좋은 위로의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세우시고 심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당연히 헐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실 권한이 그분에게 있습니다. 이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절대적인 의는 인간의 불완전하며 상대적인 의와 대조되어 왔고, 그러한 하나님의
의는 그분의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즉 그의 의는 그가 약속을 지키심에서, 죄를 심판하시는 데서(참조, 롬2:5),
또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데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세상은 날로 험악해져 가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점차 줄어들며 개인과 사회는 병들어 가는 현실입니다. 더욱이 말세 운운하는 자들은 가장 경건한 체하면서도 사회적 개혁에는 무관심합니다.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개인적인 경건을 통해 혼자만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려는 의인이 아니라 한
시대를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서 울며 사회 개혁과 불의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는 그런 의인입니다. 민족이 당하는
고통을 아파하는 바룩에게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신 것입니다.
3) 너로 생명을 얻게 하리라 (5절)
하나님께서는
바룩이 스스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룩은 유다 백성이 당할 종말에 대한 경고로 자신의 개인적인 생명의 위험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러한 바룩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꾀하는
경영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일의 성취 여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룩이 어느 곳을 갈지라도 그의 생명을 전쟁 가운데서 노략물을
얻는 것같이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사 여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도울 자는 땅 위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시고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사단을 끊임없이 도전하여도 결과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방적 승리로
맺어지는 법입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지키시는 하나님, 생명을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며 사랑의 원동력이십니다. 그분은 바룩의 심사를 헤아리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바룩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슬픔과 고통, 자신의 생명까지 위기를 느낀
바룩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심으로 그의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습니다.
결론
예레미야
선지자의 동역자로서 의로운 삶을 산 바룩을 어떠한 위치에서도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한 다윗과 같이 매사에 담대함과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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