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4일 월요일
에스겔 12장 “심판으로 임할 기근 예고”
1. 시작 기도: 우리를 향하여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깨우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악과 우상숭배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사, 흰옷 입은 주의 신부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이 하루,
우리의 남은 평생, 늘 주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90장‘주 예수 내가 알기 전'’ (통 98장)
www.youtube.com/watch?v=3sxEt-1hBbc&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앞 장인 11장에서는 유다 방백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다
바벨론 군대에 잡혀 처참한 죽음을 당할 것을 말씀으로 선포하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본장은 같은 내용이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으로 선포되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지 덧붙여지는 것이 있다면 유다 방백과 함께 유다 거민들도 그 재앙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과 도망하는 도중
공포에 떨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선포된 심판은 속히 시행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1) 이사의 비유 (1-16절)
예레미야는
맑은 날에 홍수를 대비하여 배를 건조한 노아와 같이(참조, 창6:22) 예루살렘이
아직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 마치 패전한 백성이 적군을 피해 도망하는 것같이 필수품만을 보따리에 싼 뒤 밤에 성벽을 뚫고 성밖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상징적 행동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패망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도망은 패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야간 이사 행동이 말해 주는 두번째 의미는 유다의
방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전쟁에서 패한 뒤 실제로 개구멍을 통해 황망히 도주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온 유다 백성들이 적군 앞에서 비굴하게 수치를 드러낼 것을 이 상징은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에게 이처럼 비참에 빠지도록 벌하시는 법입니다. 도망하는 유다 방백들과 백성들 위에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한다는 것(참조, 겔12:13)은 그들이 도망에 성공하지 못하고 바벨론 군대의 추격망에 걸려 죽음을 당하거나 형벌을 당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조차 그들을 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자들에게(참조, 겔9:9;겔11:3) 참혹한 죽음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한편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도망하다 잡힌 시드기야는 눈이 뽑히고 그 아들들과 방백들은 살육 당하였습니다(참조, 왕하25:1-9;왕하25:18-21).
2) 떨며 식음하는 비유 (17-20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 명령은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음료를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첫번째 의미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공격에 의해 멸망을 목전에 두고 예루살렘 성내에서
근심하는 가운데 음식과 물을 마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조국의 군대는 힘이 없고 침략군의 군대는 강성하여
언제 마지막 보루가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하에서는 어느 때에 적의 칼에 죽을지 모르므로 극도의 불안과 공포 속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상황 속에는 결코 편안히 식음을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망자의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도망자만이 느낍니다. 도망은 잡히면 끝장이 되는 외길의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유다의 방백들과 백성들은 적군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도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도주를 보고 바벨론의 군대는 가만 있지 않습니다. 바벨론 군대는 그들을
추격합니다.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 성내 에서 느낀 것보다 더 심한 불안과 고도의 고통에 시달릴 것입니다.
유다는 바벨론 군대의 군화에 의해 짓밟히고 약탈당함으로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참조,
겔12:20). 황폐한 땅에서 느끼는 적막감 또한 불안과 공포 그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절망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겪어야 할 이 모든 고통은
그들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그들이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밖에 있는 자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듯이 말입니다(참조, 마25:30).
3) 묵시의 필연적 성취와 속진성 (21-28절)
에스겔서의
전반부는 거의가 범죄한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대선지서들도 대부분 이스라엘과 유다가
받을 죄값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심판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심판은 없다고 떠들어댔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예언이 반드시 실행될 것을 힘주어 선포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한번 선포된 것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반드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속히 이루어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묵시는 이루어져도 더디 이루어지므로 아직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 하나(참조, 마25:47-51) 그것은 얕은 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이 생각치 못하는 때에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때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할 뿐입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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