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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11월 17일 목요일 에스겔 15장 “포도나무 비유”

      날짜 : 2022. 11. 17  글쓴이 : 김기환

      조회수 : 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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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7일 목요일

        에스겔 15포도나무 비유

        1. 시작 기도: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주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니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사, 흰옷 입은 주의 신부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이 하루, 우리의 남은 평생, 늘 주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214나 주의 도움 받고자'’ (349)

        www.youtube.com/watch?v=FvqMiQTnP3o&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법과 강포를 행하는 유다 백성에게 진노의 재앙을 내릴 것을 직접적인 언어를 통해 또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선포하셨습니다. 본장은 포도나무 비유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패역한 유다를 버리시고 징계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 포도나무의 특성 (1-4)

        포도나무는 자연 상태에서는 열매를 맺기가 힘듭니다. 포도나무는 연약하기 때문에 그것에게 물과 양분을 주고, 뿌리를 파헤치는 여우로부터 지켜 주며, 버팀목을 세워주고, 바람으로부터 막아 주는 등의 재배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한마디로 포도나무는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기 때문에 보호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이 손길이 없을 때 포도나무는 줄기를 제대로 뻗지 못하고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포도나무의 외형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포도나무는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가늘고 긴 줄기밖에 거의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커다란 잎사귀들로 덮여 있어 무성해 보이나 그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됩니다. 겨울에 드러난 그 모습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같은 줄기 식물인 넝쿨식물처럼 끈으로도 사용할 가치도 없으며 기둥 나무처럼 목재로 사용할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가 나무 자체로는 아무런 모양도,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자체의 생장력으로는 자라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하여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수고하여 포도를 재배하는 이유는 그 나무가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풍성하게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가 향기와 달콤한 음료와 충분한 양분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과 포도나무 (5)

        앞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의 특성을 살펴볼 때 포도나무는 연약한 가지 식물이라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그러한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은 유다 백성이 그와 같이 연약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다 백성의 조상인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민족보다 수효에 있어서도 적었으며(참조, 7:7) 그 민족의 탄생 때에도 거주할 땅조차 가지지 못한 채 애굽에게 학대받던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참조, 16:1-7). 유다의 조상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최초 조상인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데라의 아들이었습니다(참조, 24:2). 그러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민족을 이루었으나 땅도, 군대도, 법률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자체로는 이방 민족들처럼 법률을 만들거나 문화를 발달시켜 인류 사회에 공헌할 여력도 없었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도 나무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재배의 손길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음에도 사람이 그것을 재배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그 민족 자체로는 연약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여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에게서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 세상에 심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유다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 섬김과 이웃 섬김이었습니다. 

        3) 버려지는 포도나무 (6-8)

        전술한 바와 같이 유다의 존재 가치는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방백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불법을 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짓밟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열매 없는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존재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는 방법은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를 사용하여 유다를 침공하게 하심으로써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찍어 불에 넣듯이 유다를 칼로 죽게 하고 전화 속에 불타게 만들었습니다(참조, 5:2).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하며 선민 의식 속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아 멸망하자 유다는 그 교만이 꺾이고 선민 의식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국의 웃음 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말로는 다 비참한 멸망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없는 나무는 철저하게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한 가지 희망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징계는 새로운 시작을 여는 기회라는 것입니다(참조, 11:16-20).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며 그것을 달게 받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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