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5일 목요일
마가복음
10장“올바른 신앙을 가르치심”
1. 시작 기도: 우리의 중심을 아시며, 살피시며,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저희는 마음을 가꾸기보다,
외모를 더 가꾸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눈을 들어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저희의 마음을 잘 살피고 말씀과 기도로 가꾸는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영혼을 향한 간절함과 사랑을 회복하게 하셔서, 사람을
살리고 돕는 구원하는 일에 쓰임받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그 뜻을
이루는 저희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과 삶과 인격이 변하고 자라고 성숙하는 복된 한 날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279장‘인애하신 구세주여’(통 337장)
www.youtube.com/watch?v=sKRX7G_jhTY&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과 예루살렘 사역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갈릴리 사역(1-8장)과 은둔 사역(9장), 그리고 베레아를 중심으로 하는
본장이 마가복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는 이혼에 관한 논쟁과 영생에 관해서 묻는 부자 청년의
어리석음과 제자들의 무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이혼에 대해 가르치심 (1-12절)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무리로 인하여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사람이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대하여 율법이 무어라고 말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만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한 것뿐입니다. 모세의 이혼법이 주어진 이유에 대해 바리새인들의 통념과는 달리
주님은 사람들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혼법이 제정되었다는 주님의 견해는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는 창조와 동시에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두 인격체가 하나로 연합된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로서 생물학적으로는 종족의 번식과 그 영속화를 도모하는
한편,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적 존재로서의 동물적 삶을 초월하는 도덕적 존재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표상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선택이며 소명이므로
사람이 임의로 이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창조의 원리는 불변의 원리이므로 가령 이혼
증서를 써 주었다 해도 하나님의 원리에서는 승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맺은 부부 관계는 불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혼은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간음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연고 외에 이혼하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참조,
마19:3-8). 그리고 재혼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재혼도 금하셨습니다.
2)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 (13-31절)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주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의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태도를 주님은 책망하시고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청년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부자였으며 관원이었습니다(참조,
마19:22;눅18:18). 예수님은 청년에게
십계명 중 지켜야 할 도덕적 계명들을 지켰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청년은 그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그 청년에게 가진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 후에 당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헌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년은 자신의 많은 재물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포기하였습니다.
슬픈 기색으로 돌아간 청년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그가 부자라는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 대신 물질을 두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물질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은 삶에 있어서 단지 수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주의 뜻대로 살라 (32-52절)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난에 관하여 세번째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수난에 관한 예언은 앞서 말씀하신 두 예언보다 더욱 자세하면서도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듯이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환난이 올지라도 이겨내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께 야고보와 요한은 장차 임하게 될 주의 영광 중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 주님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추구해야 위대하게
왼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소경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주님을 부르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이 외면한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한다고 솔직한 답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나. 이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흔히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고침을 받은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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