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9일 월요일
누가복음
15장“회개를 기뻐하심”
1. 시작 기도: 우리를 찾아오시며,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보다 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과 은혜만을 갈망하는 돌아온 탕자와도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의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큰아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간절히 소망하기는 우리로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게 하시고, 나의 노력이 아니라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에 온전히 나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과 삶과 인격이 변하고 자라고 성숙하는 복된 한 날 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278장‘여러 해 동안 주 떠나’(통 336장)
www.youtube.com/watch?v=_ecXz0irjgM&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에는
잃었던 양의 비유(3-7절), 잃었던 드라크마의 비유(8-10절),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세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의 사랑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1) 잃은 양의 비유 (1-7절)
예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부하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누리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죄인이라고 멸시당하는 창기나 세리 그리고
사람들에게 부정하다고 따돌림당하던 문둥병자, 절뚝발이, 소경과 같은
사람들은 경제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고 그들을 회개시키고 그들의 육신의 병을 고치심으로써 그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가까이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세리와 죄인들을 위해 비유를 들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잃은 양의 비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목자는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을 안전한 곳에 놓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양을 그냥 놔두면 필경은 맹수들의 먹이가 되거나 실족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아는 목자로서는
그 양을 찾는 노력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선 목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한 마리 양을 찾았습니다. 그는 잃었던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양이 지쳐 있거나 다리가 상해서 걷지 못할 때 목자들은 그 양을 어깨에 메는 것입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은 하나님 곁에
안전히 거하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잃은 양은 죄악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참조, 마9:13).
2)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8-10절)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드라크마는 헬라의 은화로서 로마의 데나리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전300년경에 한 드라크마는 양 한 마리의 값이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그 가치가 상당히 절감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여인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다는 것은 매우 가난한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 드라크마를 소유한 여인은 그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등불을 켜서 찾아나섰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가난한 서민의 집에는 창문이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작은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릴 경우 찾으려면 낮이라도 등불을 켜야만 했습니다. 이 여인도 잃은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한 손에는 등불을 가지고 또 한 손에는 비를 가지고 쓸면서 찾았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여인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잔치를 배설하고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여인에게 있어서 친구와 이웃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기쁨을 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비유를 통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참된 회개를 하늘나라의 모든 즐거운 노래들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3)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11-32절)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비에게 자신의 분깃을 달라는 이야기로 비유를 시작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부자
아버지 슬하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세계를 동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돌아오게 될 분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들의 고집을 안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갈 재산을 주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곧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돼지를 치는 종의 자리에까지 전락하였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이 없어 심한
굶주림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배고픔으로 인해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회상하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로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목격하고 아직도 상거가 먼데도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아버지의 기뻐함과 아들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주었습니다. 또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이웃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아들로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죄인의 회개를 자장 기뻐하십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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