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7일 월요일
요한복음
9장“소경을 고치신 예수”
1. 시작 기도: 우리를 고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저희를 찾아오셔서,
맹인된 자를 보게 하셨던 것처럼, 저희의 눈을 뜨게 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땅히 보아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믿음으로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이 믿음에 확신을 더하여 주시고, 어떤 위협과 유혹에도 저희의 신앙의 고백이 흔들리지 않고, 더욱 깊이 주님을 알아가는 복된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빛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통 357장)
www.youtube.com/watch?v=mqFZi_ZtIDQ&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예수는 날
때부터 소경 되었던 자의 눈을 고치셔서 밝히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이 생명의 빛 되심을 계시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의 빛이 드러나자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핍박이 더욱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서 예수의 역사를 부정하며 예수를 정죄하였습니다.
영적인 눈이 먼 자들은 진리를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대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소경을 고치신 그리스도 (1-12절)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에 대하여 제자들은 누구 죄 때문에 날 때부터 소경 되었느냐고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소경과 같은 무서운 병은
반드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는 아직 죄를 지을
기회도 없이 소경이 되었으므로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혹시 그 부모의
죄 때문에 그 사람이 모태에서부터 소경 된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의해 그 사람이 소경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예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전조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소경 된 자가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눈에 붙은 진흙을 씻을 때 그의 눈은 뜨여지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소경의 눈을 뜨게 해 빛을 보게 하심으로써 이를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는 소경의 육신의 눈을
보게 하심으로써 영적인 흑암 속에 있는 죄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는 분임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자 이웃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잘 몰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을 때 고침받은 자는 예수께서 자기 눈을 고쳐 주셨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예수께 병 고침을 받은 자는 자연스럽게 예수의 능력을 증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께
영적인 눈을 고침받은 자로서 예수의 능력과 역사를 증거하여야 합니다.
2)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 (13-34절)
예수께서
소경의 눈을 고치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소경의 눈을 고치셨음을 전해 듣고는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이적을 행할 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소경 되었던 자에게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신 있게 선지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예수의 역사를 체험하였기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 되었다가 고침받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하여 그의 부모를 불러 확인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아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부모는 모른다고 말하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으면 유대교에서
출교 당하므로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침을 받은 자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예수를 선지자로
증거하였지만 그 부모는 핍박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담대히 증거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소경 되었던
자를 다시 불러 예수는 죄인이므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들은 고침받은 자의 증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추종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자는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한 일을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예수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아니면 이러한 일을 행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즉 그는 예수가 메시야임을 공개적으로 신앙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소경 되었던 자는
예수께 육신의 눈을 고침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을 고침받았던 것입니다.
3) 영적인 소경 된 자들 (35-41절)
예수께서는
소경 되었다가 고침을 받은 자에게 찾아가셔서 자신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는 그 자신에 대한 신앙 고백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는 예수가 누구신 줄 몰랐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눈을 뜨게 해준 장본인임을
밝히셨고, 소경 되었던 자는 예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자신이 예수를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능력으로 병 고침을 체험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음을 깨달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셔서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 소경의 눈을 고치심의 목적이 그에게 믿음의 눈을 뜨게 해주시기 위함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소경이냐고 묻는 바리새인에 대하여 본다고 하는 자에게 죄가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은 정상적이었지만 영적인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영적인 눈이야말로 죄로 인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먼 것은 진리를 보고도 섬기지 아니할 뿐더러 오히려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육신의 눈이 안 보이고 믿음의 눈이 뜨여짐이 중요하였는데, 그것은 육신의
눈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만 필요하지만 영적인 눈은 영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외적인
것으로 자랑하며 교만히 행하므로 예수께 멸망 받을 자들로 정죄받았던 것입니다.
결론
[첨부파일 펼치기] [파일 일괄 다운로드]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