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일 목요일
사도행전
3장“베드로의 능력”
1. 시작 기도: 우리를 고치시며, 말씀하시는 능력과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림으로,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을 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금이나 은이나 권세가 교회의 능력이 아니며, 교회의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의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통 460장)
www.youtube.com/watch?v=YHIpJDIjEOU&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전장의 끝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적과 함께 주의 은혜가 넘침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해 갔습니다. 본장에서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갖은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온전함을 갖추기 위한 많은 모습을 대하게 됩니다.
1) 고침받은 앉은뱅이 (1-10절)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정한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제구시
즉,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앉은뱅이를 사람들이 메어 와서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40년 이상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소외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성전 미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늘 그 곳을 지나 다녔기 때문입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 때 통과하게 되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들은 유대인 남자들이었던 까닭에, 성전 바깥뜰(이방인의 뜰)을 지나 계단을 올라 여인의
뜰(성전 내부의 첫 뜰)로 들어갔고, 다시 이스라엘의 뜰로 들어갔습니다. 제사 의식은 좀더 들어가 성전 가장 안쪽 뜰(제사장의 뜰)에서 행해졌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보통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조금 더 걸으면 바깥뜰과 안뜰을 나누는 성전 벽이 있습니다. 이
성전 벽에는 이방인이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만난 것입니다. 실상 사도들은 그 사람이
구하는 유의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나은 것을 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는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가는 이적을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2:43에는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이 발생한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 고치는 이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와 표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적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주었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했으며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직을 확증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적들로 인해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더욱 신빙성 있게 되었고 능력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표적 중의 하나를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아보고는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습니다.
2) 베드로의 설교 (11-26절)
앉은뱅이의
일로 놀란 무리들은 모두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행각이었고 이방인들의 뜰 동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고 잔뜩 관심을 가지고 그 곳 모여든 군중들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으나 이제 생전 처음으로 건강한 두
다리를 갖게 된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설교할 자연스런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이 그 앉은뱅이를 걷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도, 경건도 아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를 고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이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적을 보게 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치료의 능력은
예수께로 말미암았음을 베드로는 힘있게 증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아무리 미미한
형태라도 믿음이 있으면 고치셨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도 바로 믿음에 의해서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몇 달 전 예수님은 성의 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었습니다. 그분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리우고 장사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그분의 종말인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고 로마 관원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 일의 증인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인 무리를 향해 예수를 소개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가리켜 '거룩하고 의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입은 사람에게 쓰는
고유명사였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듯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분'이셨습니다(참조,
사52:13). 누가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종이기도 하시지만, 모세가 예언한 대선지자이기도 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사 그의 백성을 자기들의 죄에서 돌아서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안에서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시다는 것입니다.
결론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사와 표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속에서 이 표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능력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의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언들의 성취와 함께
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시대는 회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베드로의 메시지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