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고린도후서
3장“새 언약의 일꾼이 된 바울”
1. 시작 기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형상으로 거룩하게 변화하는 영광을 일생동안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200장‘달고 오묘한 그 말씀’(통 235장)
www.youtube.com/watch?v=4QG8MS6uj94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에서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이 된 자신의 사도직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천거서가 필요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회심한 고린도 교인들을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새 언약의 직분이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 사도권에 대한 답변 (1-4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부치거나 맡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천거서란 일종의 추천서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1세기의 관행으로 예루살렘 밖에서 전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천거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례를 들어 천거서를 가지지 아니한 바울을 적대자들은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에게는 그러한 천거서가 필요없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소개장의 불필요한 것을 말함이 아니라, 바울의 추천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써 낳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우리의 편지 즉 천거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편지인 바울의 천거서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회심하도록 한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쓰여진 바울의 천거서는 종이
위에 쓰여진 인간들의 편지와는 달리 지워질 수 없는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추천서는 거짓 사도들의
추천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한 것이었으며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빛날 면류관이요 상급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직에 관한 천거서라는 확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의
성결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능력을 통해 자신의 사도 직무도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약 시대의 율법과 비교하여 새 언약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율법과 복음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를 말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자로서의 직분에 만족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을 변화시킨 복음의 비밀은 바로 생명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구속 사역에 근거한 새 언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의 직분의 영광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의 영광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을 예로 들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이 새겨진 법궤를 받아 백성에게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가 율법 즉 사람을
정죄하는 직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생명을 주는 의의 직분인 복음 전파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넘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직분을 영광이 넘치는 직분이라고 주장한
것은 복음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에게 직분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런 신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매우 영광된 신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영안을 가리는 수건 (12-18절)
바울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지 못하게 하려고 얼굴에 수건을 썼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사람들을 비추는 일시적인 광채일 뿐입니다.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 있던 일시적인 영광을 언급하면서 의의 직분이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구원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자에게로 인도하는 일꾼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었고,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바울은 모세의 수건이 모세의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율법에 대해 지나치게 완고한 입장을 견지하는 유대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마음이 수건으로 알려진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이라든지 메시야의 역할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덮은
수건은 완고함의 표지였으며 불신앙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 실패하게 한 이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벗겨진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분이 율법의 완성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그분은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으며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 되시기 때문에 그 안에 있으면 수건이 벗겨지게 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무지를 벗는 길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 즉 적극적인 회개뿐입니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그들의 마음을 덮은 수건이 벗겨져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과 영광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론
본장은 적대자들의
비난에 대해 사도직을 변호하고 새 언약의 직분의 영광스러움을 주장하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서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이 업신여기고 비난할지라도 조금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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