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3일 월요일
고린도후서
12장“육체의 가시”
1. 시작 기도: 우리를 붙드시고, 약한데서 강함을 온전함을
이루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주님만을 신뢰하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갈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며 눈물로 점철될 인생 가운데, 세상을 향하여 눈물 흘리며 울어줄 줄 알게 하여 주옵시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00장‘내 맘이 낙심되며’(통 406장)
www.youtube.com/watch?v=TO0y8-Kj-NQ&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바울은 본장에서 14년 전에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 계시를 간략하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자랑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회를 위한 자신의 사랑과 헌신, 물질에 대한 태도와 방문 계획 등을 밝히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약한 것을 자랑함 (1-10절)
사도 바울은
무익하나마 자신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부득불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본 주의 환상과 계시는 분명히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바울은 십사 년 전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매우 조심스럽게 언급하였습니다. 그가 셋째 하늘에
올라간 사건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드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그 곳에 이르게 되었을 뿐이며,
이 같은 신비는 현대 과학으로도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때에 자신이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을
잠깐 언급한 후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본 주의 환상과 계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많이 받은 바울이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육체적 질병으로 생각됩니다. 육체의 가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일생 동안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질병은 사람의 교만을 방지하는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하였습니다. 바울의 기도에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준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떠나지 않는 가시 즉 그의 몸을 괴롭히는 질병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에 의하여 그의 몸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을 기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가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 나서 곧 그의 간증이 자칫 자랑으로 여겨질 것을 염려하며 스스로 어리석은 자라고 자처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여지기를
원할 뿐 추앙받는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반증해 줍니다. 그는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사도로서의 강한 자부심과 철저한 사명감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거짓 사도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실제 능력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막중한 권위와 임무를 위임받은 사도임을 증거하기 위해 때로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되 쓰고도 남을 정도로 공급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위엄과 권위로 교회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낮은 곳,
낮은 자리에서 성도들을 돌보고 말씀을 증거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생계에 필요한 것들을 충당하면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는 교회가 그의 생활을 책임져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도자란 권리를 더 많이 향유하는
자가 아니라 더 많은 의무와 책임을 지는 자입니다.
3) 성도를 위한 각오 (14-21절)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재물을 탐한다는 악인들의 근거 없는 비방을 일축하는 동시에 바울의 진실한
마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에 비유하였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이 교회를 돌보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있는 지도자는 성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의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지도자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고 구원시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소유물을 허비하는 것과 자신의 온몸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각오도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각오는 실로 위대한 사역자의 모습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역자들의 거룩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증거하며 성도들을 돌보았지만 어떤 물질적인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안에 일부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비방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음해하고 그 사역을 중단시키려는
자들의 소행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곧 세번째로 방문하게 될 고린도 교회가 분쟁 가운데 휘말려 있을 것을
염려했습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바울의 경고는 곧 멸망이 이르기 전에 분쟁을 그치라는
경고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분쟁에 휘말린다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를 상실하고 맙니다.
바울은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말로 해서 안 들으면 때리십니다.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사토 바울의 위대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육체의 가시를 오히려 기뻐하고 더욱 하나님께 겸손한 자세로 충성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있는 약한 것들에 불평하지 말고 그것을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활용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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