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일 목요일
요한계시록
4장“하나님의 영광”
1. 시작 기도: 거룩하고 전능하시며,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듣지 아니하는 이 시대에,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이기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이 물질이 아니고,
이 세상 권력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증거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이 한해,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154장‘생명의 주여 면류관’(통 139장)
www.youtube.com/watch?v=UNlU0UXu1OY&ab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부터
시작해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보이신 본격적인 환상과 예언적인 광경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장에서는 사도 요한이 그가 본 하늘의 광경과 아울러 하늘에서 네 생물들의 찬양과 이십사 장로들이 불렀던 찬양으로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 가득 찼던 환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장과 5장에서는
장차 있을 심판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보좌와 심판자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늘의 환상들 (1-7절)
본장에 펼쳐지는 예언의 환상은 그리스도께서 환상을 보여 주는 서신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곱 금 촛대 사이에서 지나시던 그리스도께서 이제 다시금 음성을 발하시어 요한을 부르시고 장차 있게 될
일을 그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일곱 교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편지로 적어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었듯이 이제부터 보여 주시는 장래의 일들에 대해서도 요한은 상세히 적어서 성도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이때 성령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이 예언의 환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요한은 먼저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심판의 자리로서
하나님 자신의 보좌입니다. 이 보좌에서 나오는 권세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지배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요한은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떤 표현으로도 그분의 모양을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요한은 그분이 벽옥과 홍보석 같다고
제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좌에는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둘러싸여있고 보좌 둘레에 이십사 장로들이 앉아
있는 스물네 개의 보좌들을 보았습니다. 이들 이십사 장로들은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전체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직접 뵈면서 성도의 의를 나타내는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광의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십사 장로의 존재는 하나님의 교회에 있어 서
하늘나라에 있는 승리적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이 아닌
승리한 성도들의 공동체를 상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요한은 보좌로부터 번개와 뇌성이 나는 것을 보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을 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요한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직접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요한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를 보았으며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이십사 장로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네 생물들은 하나님의 보좌나 이십사 장로들, 하나님의 백성들과 가까이에 있었고 앞뒤에 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겔1:18과 겔10:12에 나타난 대로 통찰력과 지혜가 뛰어남을 상징합니다. 또한 그것들은 각각 사자 같고 송아지 같고 사람 같으며 독수리 같았다고 합니다. 이
생물들 역시 순서에 약간 차이는 있지만 에스겔이 본 환상과 같으며 각각 피조물들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사자는
짐승의 왕을 상징해 용기를 가지고 있었고, 송아지는 가축의 대표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장으로서 지혜를, 독수리는 새들의 왕이었습니다. 이들은 밤낮 둘러서서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사6장에서 이사야가 본 환상에 나타나는 천사들과 같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그 날개의 주위에 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2) 밤낮 쉬지 않는 하늘의 찬양 (8-11절)
사도 요한은
네 생물들의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장면은 그들의 모습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지가 이사야가 본 환상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 찬양의
내용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였습니다. '거룩하다'를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그 삼위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고 무한히 거룩하신 분이라고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번의 찬미를 성삼위에 대한 개별적인 찬양으로 돌리지 않더라도 3은 하나님의 숫자이므로 세 번 찬미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장엄하고 완전한 찬양을 의미합니다. 네 생물들의 찬양에 이어서 요한은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리어 겸손하고
경건하며 존경하는 태도로 찬양했습니다. 또한 이십사 장로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던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모든 은혜와 영광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받은 영광이란 하나님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십사 장로들 자신들에게도 영광임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경배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므로 만물이 생겨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신 분으로서 누려야 할 영광을 당연히 가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만물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면서 계속적인 창조를 하시기에 또한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시기도 하십니다. 만물로부터 여러 방법으로 영광을 받으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롬11:36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은 당연히 찬양을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바로 그런 합당한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요한이 본
장래의 모습에 대한 첫 계시를 기록하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에 대한 모습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 생물들과 이십사 장로들의 하나님
찬양을 기록하고 있어서 하늘에 넘치는 찬송의 물결을 우리들이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히 거하는
성도들이 찬양한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찬송생활을 돌아보고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을 향한 참다운 찬양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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