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9일 월요일
민수기 10장 “시내 광야의 행진”
1.
시작 기도: 우리의
앞서 행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주관하시며, 동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날마다 실수하고 넘어지는 저희들이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자비롭고 은혜로우심으로 기다려주시는 그 사랑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넉넉함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저희들 다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통 318장)
www.youtube.com/watch?v=PCIpVZCQ4QY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이스라엘이 시내 광야에
머무르면서 본격적인 광야 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월절 준수와 불과 구름 기둥이 그들을 인도한 사실을 소개한 데 이어 본 장에서는 광야 행진에
필수적인 은 나팔을 통한 신호 규정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내 광야를 떠나게 된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무사히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어김없이 따르는 일이 필요합니다.
1)
은 나팔 제작과 신호 규례 (1-10절)
2) 본격적인 광야 행진 시작 (11-28절)
이스라엘 백성은 근 1년 간 머물던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약 3일 길을 간 후에 바란
광야에 당도하게 됩니다. 물론 바란 광야에 도착하기까지 두 곳의 중간 기착지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숙영지를 옳긴 것은 다만 광야에서 또 다른 광야로 나아갔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하고 험한 나그네 같은 생활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헤매는 40년 동안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우리 성도는 하늘 가나안에 당도하기까지 이 세상의 삶에서는 그저 행인이요 이방인이자 나그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행진해 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정해 놓은 원칙과 기준을 따라 차례차례로 행진해 가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 따라 질서대로 진행해 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고집과 독선으로 인해 이기적으로 하기보다 자신의 고집을 꺾고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명령대로 행할 때 거기에 반드시 부흥과
번영이 있을 것입니다.
3)
호밥에 대한 지원 요구와 언약궤의 인도 (29-36절)
광야 여행을 함에 있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자, 한 사람을 이스라엘 행진의 길 안내자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 르우엘의 아들이요, 모세에게는 처남인
호밥이었습니다. 호밥은 오랫동안의 광야 생활로 인해 광야 여러 곳의 지리와 그 곳의 형편을 소상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광야 여정 동안 도움을 받고자 호밥에게 길 안내를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으로 인해 모세는 호밥을 설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편
이 같은 노력에 대해 자칫 모세의 믿음이 결여됨으로 인한 불신앙적인 행동이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재능까지 선히 이용하시어 당신의 거룩한 일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봄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 행진을 하는 동안 내내 하나님이 명하신 바를 좇아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앞세워야만 했습니다. 법궤란 다름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물건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앞세워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죽음이 늘상 머물러 있는 광야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안전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후원이 필요했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의 궁극적인 인도자
역시 우리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단지
가나안 땅을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마침내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간섭해 주십니다. 때로 친히 명령하시며 인도하기도 하시고 혹은 인간과 상황을 사용하기도 하시어 당신의
백성을 안전히 복지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룩한 사역은 바로 오늘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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