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9일 토요일
욥기 3장 “욥의 좌절과 한탄”
1.
시작 기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말씀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까닭없는 고난과 슬픔 가운데, 낙망하지 않게 하시고, 마음과 생각과 입술을 지키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인내하며 순종하게 하시고,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통 533장)
www.youtube.com/watch?v=w8fcx7zEenw&list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욥은 갑작스럽게 당한 끔찍한
재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재난이 너무나도 극심한 것이어서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욥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범죄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좌절을 느끼고 그것을 한탄하였던 것입니다. 본장은
좌절한 욥의 한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좌절과 한탄의 배경과 원인 (1절)
2) 생에 대한 저주의 세 단계 (2-10절)
욥3:2-10의 내용은 욥이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자신의 출생 준비 기간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가 출생하기 이전의 날들과 빛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이 세상에 아예 태어나지도 않을 수 있었으며, 그렇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 현재와 같은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욥의 절망은 이처럼 깊었던 것입니다. 설령 출생하기 이전의 날들이
있었고 빛이 있어 잉태되었다 할지라도 태어나지 못하고 죽는 태아들이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바로 그런
운명의 태아들 사이에 있었더라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함으로 이 세상에서 겪는 현재의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음에도 그의 고통이 너무 크고 깊었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염원을 이와
같은 염세적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처음에 그가 잉태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노래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잉태되었더라도 태중에서 죽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것으로라도 행복했을 것을 노래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그는 설령 잉태되는 날이 있었고 그 잉태로
인해 태어났을지라도 고통을 받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라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욥은 현재의 고통이 너무도 크므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염세주의와 그리스도인 (11-26절)
소포클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쇼펜하우어, 까뮈 등의 철학자들에게서 꽃피운 염세주의 철학은 인간의 생 자체를 저주하는 동시에 인간의
생을 인간이 좌지우지하려는 인본주의 철학입니다. 염세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부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도 거부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취할 사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든 하나님의 창조를 불의하고 의롭지
못한 것으로 보며 현재의 모든 삶도 부조리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염세주의는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죄악된 세상을 선별적으로
거부하는 건설적 염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모든 염세주의가 아니라 철학적 염세주의이며 인본주의적인 파괴적 염세주의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본래에는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악에 물들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죄악으로 그 영안이 어두워진 인간은 존재의 수단인 피조세계를 숭배 대상으로 오인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피조물이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장애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피조 세계를 극복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 잠시 이 세상 것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세, 욥, 엘리야 및 전도서의 염세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는 염세주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복락을 위해, 그리고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떠나 의에 이르기 위해 이 세상에서
떠나가기를 구한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대해
이중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인 동시에 현세에서의 삶의 복락을 제공하는 선한 수단으로 보며,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올무로 보는 것입니다. 이 두 사상을 바르게 가지고 바르게 적용해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펼치기] [파일 일괄 다운로드]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