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5일 금요일
욥기 8장 “빌닷의 2차 변론”
1.
시작 기도: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을 아시며, 입술의 말을 들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한없는 자비와 긍휼과 사랑을 저희에게 허락하사 많은 곤고한 형제들을 돌아보고 세워줄 수 있게
하옵시고, 혹 저희 자신이 곤고한 일을 당하게 될 때, 끝까지
저희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통
395장)
www.youtube.com/watch?v=Urrr1WnKYdQ&list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에는 욥의 친구 가운데
수아 사람 빌닷의 충고가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닷의 변론의 주류는 역시 욥을 책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인과응보적 논리로 일관합니다. 빌닷은 자신의 주장의 권위를 전통에 두고 있습니다. 즉, 죄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전통적인 교훈을 지지합니다. 빌닷은 엘리바스와 같은 입장을 취하면서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욥을 위로하고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욥은 틀림없는
악인이라고 정죄를 한층 강화하였습니다.
1)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공의 (1-4절)
2) 악인을 멸하시는 하나님 (5-12절)
빌닷은 욥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빌닷의 논리는 의인은 흥하고 악인을 멸망받으리라는 그의 신념 내지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같은 빌닷의 논리적 귀결은 결국 욥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빌닷은 자신이 갖고 있는 상식의 수준에서 욥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빌닷은 자신의 논증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선조들의 교훈을 들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말이 자신의 논리가 아니라 고대로부터 내려온 지혜이며 보편적 원리이기에, 욥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것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선조들의 교훈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하고 따르라고 합니다. 선조들의 교훈은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인 인간들의 질서
유지를 위해 내려 주신 원칙들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토록 불변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빌닷은 자신들의 짧은 지혜를 선조들의 지혜와 비교하여 인생의 유한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존재의 미약성 뿐만 아니라 인생의 덧없음을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다고 비유법을 사용했습니다. 옛 선조들의 교훈에 귀기울일 것을 역설한 빌닷은 실제로 자신이 옛 사람들로부터 들은 교훈을 전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없는 인간은 마치 진펄과 물이 없는 왕골과 같은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악인들이 가지는 헛된 희망의 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참조, 시10:4).
3)
하나님을 잊은 자의 길 (13-22절)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하나님의 전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을 망각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항상
자기의 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아니합니다(참조, 롬1:18-32). 이러 한 자들을 다윗은
악인이라고 하였으며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참조, 시6:4). 빌닷은 하나님을 잊은 자를 왕골과 갈대, 거미줄의 교훈, 푸른 나무의 예를 들어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악인이 세상에
소멸함이 없이 득세하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심판 앞에는 그 성장력도 보잘 것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빌닷의
논리를 정리해 보면 악인은 세상에서 득세하지만 보편적으로 그 악인은 멸망하고 의인이 설 것이기에, 욥도
의인의 자리에 서게 되면 고난의 자리를 모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 빌닷의 말 속에는 진리인
듯한 의미들이 내포해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원론적입니다. 빌닷은 지금까지 인과응보론적 고난관을 역설하며
욥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하여 사곡한 자로 표현된 악인은 벌을 받지만
의인은 복을 받는다는 논리를 전개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은 붙들어 주신다는 말과 대칭하여 악한 자는
붙들어 주지 않으신다고 빌닷은 역설합니다. 빌닷은 순전한 자와 악한 자의 차이를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느냐, 붙들지 아니하시느냐에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자의 입에
웃음으로 그리고 그 입술에는 즐거운 소리로 채우시지만 악인에게는 부끄러움과 거처를 모두 없애 버리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본장에서 욥을 향한
빌닷의 충고가 적절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다른 사람을
충고할 때에 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지 아니하고, 원칙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접근하여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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