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0일 토요일
욥기 21장 “소발에 대한 욥의 2차
답변”
1. 시작 기도: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고통받는 자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날 때, 욥처럼 고통과 의문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저희의 부족한 시선으로는 다 볼 수도 없고,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크고 온전하신 계획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악인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온전하게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찬송하며
감사하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94장 ‘이 세상의 친구들’ (통
449장)
www.youtube.com/watch?v=msDIKnop2bc&list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에는 소발의 의견에
대한 욥의 답변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욥은 소발의 주장과는 달리 악인도 때때로 번영을 누린다는 점을
내세워 고난과 범죄는 별개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는 이 세상을 사는 인간사에 있어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다루시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세에서는 이 세상과는 달리 공의로 집행하실 하나님을 주장하여 소발의 변론에 대항하였습니다.
1)
악인의 번영 (1-16절)
2) 하나님의 심판 (17-26절)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의
일이 아닌 모든 행위를 종합하여 판단하셔서 심판의 때를 정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도 관용이 크시며 인자로 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잘못을
행할 때 그에 따르는 벌을 즉각 내리지는 않습니다.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은 것은 인내가
크신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급하게 벌하지도 않으시지만, 이유 없이 악에 대해 묵인하시기를 계속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더딘 것 같으나 반드시 임하여 악인의 죄를 징벌하십니다. 재판장이신 전능자의 손에는 잔이 있는데
그 잔에는 독과 같이 유해한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잔을 마시는 자는 치명적인 고통을 받게
됩니다. 술거품처럼 넘치는 가득한 잔을 하나님이 부으실 때 악인은 남김 없이 마시게 됩니다(참조, 시75:8). 악인은
진노의 잔을 마시기 전까지는 자신의 목적대로 이루거지는 성취감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노의 잔을 마시기 시작하면 비틀걸음 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처럼 악인에 대한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최종적으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높은 자리와 신분은 물론 하나님의 영들,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는 하나님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욥은 하나님께서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와 진실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3)
악인의 현세에 대한 욥의 견해 (27-34절)
욥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가릴 것이 없이 모든 사람은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힌다고 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이 인간에게 정해진 사실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나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이나 모두가 죽음으로 인생을 마친다는 사실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떤 자세로 삶을 사느냐일 것입니다. 외적인
것만 가지고 내적인 것을 판단하기에는 세상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자 중에서도
선한 자가 있고 잘 사는 자 가운데도 악인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욥의 고난을 보고 악인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이러한 친구들의 이원론적인 논리를 깨뜨리고자
다양한 하나님의 섭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선악이 함께 공존합니다. 성도들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하나님의 섭리가 없는 세상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악인이 이 땅 위에 살았을 때와 죽고 난 이후에 사람들로부터 받는 모든 일들이 그 외형으로만 볼 때에는
한없이 평안하고 안락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친구들의 주장(참조, 욥18:13-21)을 반박하는 말입니다. 악인의 무덤까지 보호된다는 말은
죄 없는 자가 큰 고통을 겪으면서 사는 것 또한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은 소발의 답변에 대한 결론으로 너희의 위로와 대답이 헛되며 거짓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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