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일 월요일
욥기 22장 “욥의 죄를 비난하는 엘리바스”
1.
시작 기도: 우리
입술의 모든 말을 들으시고 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엘리바스처럼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며
쉽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고, 타인의 아픔 앞에서 섣부른 조언 대신
잠잠히 함께 울어주고, 진실한 사랑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입술이 정죄의 말이 아닌 은혜와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통 465장)
www.youtube.com/watch?v=lIhIrsSsbVw&list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본장에서부터 31장까지는 욥과 그의 친구들간의 세번째 변론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본장에는
엘리바스의 세번째 변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어조로 욥의 맹목적이고
오만한 독선에 대해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말을 듣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1)
죄인으로 정죄함 (1-11절)
2) 의인과 악인 (12-20절)
엘리바스는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언급한 후 욥의 말을 비난하였습니다. 즉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며 빽빽한 구름이 하나님을 가렸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하시고 궁창으로 걸어 다니실 뿐이라고 했습니다. 욥이 이런 말을 했다는 엘리바스의 주장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자기의
논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과장하는 것 또한 악인의 술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선보다 악을
사랑하여 의를 말함보다는 거짓을 말합니다(참조, 시52:3) 죄의 길을 걷는 자는 영적 소경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하는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대상을 찾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몇 가지 변화를 갖게 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상적으로 듣는
잘못에 빠지게 되고(참조, 겔22:32), 들은 말씀을 곧 망각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죄악된 길을
고집하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이 멸망당하는 것에 대해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무죄자는 그들을 향해
비웃으면서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조소와 조롱은 악인들이 받아야 할 보응임에는 틀림없습니다(참조, 시2:6) 악인의
세력이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참조, 시37:35) 같으나 결국 의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징벌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시하기보다는 그 형통이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의인의 승리를 믿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 화해하라 (21-30절)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권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엘리바스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즉 그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권면은 사실 욥에게서는 타당하지 않지만 죄인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되는 말씀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불의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의의 도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는 오빌의 금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에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의
자랑은 예수님 한 분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나 학벌이나 경륜까지도 예수님 안에서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엘리바스의 지적은 욥에게는 적당하지 못한 말이었지만 대부분의 신앙인에게는
적절한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만이 참 보배입니다. 이제까지
욥의 회의주의 및 불신앙의 소치를 비판하던 엘리바스는 위로자의 자세로 돌아가 연거푸 하나님과의 화해를 권합니다.
그는 만약 욥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더 이상 두려운 분이 되지 않고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 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욥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며 장래가 형통할 것이며 하나님의 빛이 그의 길을 비추어 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영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엘리바스는 욥이 범하지도
아니한 가상적인 죄들을 열거하면서 욥을 정죄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속에 있는 것들 즉 인격이나
신앙, 교양, 도덕성 가치관 등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을 많이 하는 것과 입술을 잘못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은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을 멀리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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