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5일 월요일
욥기 34장 “엘리후의 심판”
1.
시작 기도: 우리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 정의와 온전함으로 행하시는 온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이해와 생각을
초월하시는 절대적이며 주권적인 분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행하심은 우리의 좁은 시각으로 다 알 수 없음을
중심으로, 진심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 땅의 그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그 어떤 인생이 자신을 의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통 364장)
www.youtube.com/watch?v=9FNMj1rPU2c&list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엘리후의 변론이 본장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욥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한 분이라고 주장했다고 공박하였습니다. 반면에 그는 우주 전체를 통치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여러 각도에서 변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의 논리 전개도 욥의 세 친구들과 유사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1)
하나님의 공의 (1-9절)
2)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 (10-30절)
하나님은 창조자이자 통치자이시니
반드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논법을 전개한 엘리후는 군왕, 귀인, 권력자, 부자, 빈자들을 나열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고로 어떤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공의로우심은 결국 범죄한 인류를 대신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다는 말로 사람의 일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범죄한 사람이 숨을 곳이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꺾으시고 세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진리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 어느 것의 영향도 받지 않으시고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취소하거나 변개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무시하고 떠난 자들에게는
얼굴을 감추시고 그를 찾고 사모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우주 만물이라는 포괄적
부분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흥망 성쇠, 임금의 세움과 폐함, 한
개인의 생로병사의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완벽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세상의 구석구석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셔서 그의 나라를 강성케 하십니다.
3)
욥을 비난하는 엘리후 (31-37절)
사람의 범죄는 반드시 그가
의식하고 고의로 저지르는 것만은 아닙니다. 전혀 죄라고 생각지 않고 한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 커다란
득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특히 그것이 자신의 범죄로 인한
징계일 때 사람이 할 일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바로 현재의 상황에서 욥이 해야
할 행동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그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이 말을 욥에게 적용시킨 것은
잘못이지만 그의 말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엘리후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그 고통의 해결책으로
욥의 친구들이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사실 회개는 죄를 치료하는 좋은 약입니다. 죄를 고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되나 회개하기를 힘쓰는 자는 구원과 회복과 형통함을 얻습니다. 회개는 결코 죄에 대한 미봉책이 아닙니다. 한번 회개한 죄는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욥의 대답이 악인들의 것과 같으며 자신과 친구들의 충고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엘리후의 입장에서 볼 때 욥의 행위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조롱과 모독을 가하는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교만해진 욥에게 고통이 계속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후의 지혜와 변론에도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욥과 그의 세 친구를 공격하면서
변론에 나섰던 엘리후도 욥의 세 친구들과 유사한 논리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그 역시 욥이 고난받는 것은
원인이 그의 죄에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 중심에서 나른 사람을 흔히
보게 되는데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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