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0일 월요일
시편 39편 “고난 중의 회개 기도”
1. 시작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행위를 조심하며,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도록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의 종말과 연한을
알게 하사 연약함을 깨달아 겸손케 하옵소서. 진실로 하나님만을 바라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겸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통
539장)
www.youtube.com/watch?v=rf9YzdOIVrY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시인은 대적들에게 조롱과
박해를 받는 중에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회복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무상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진술하였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구원주가 되심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1)
묵상 중의 기도 (1-4절)
2) 주께 있는 소망 (5-11절)
시인은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소망이
헛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재물을 많이 쌓아도 짧은 인생이 지나가면 그 재물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 번의 호흡과 같은 인생이 이 땅에서 추구하는 어떤 것도 궁극적인 가치를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은 이러한 헛된 소망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둔다고 고백합니다. 주께만 영원한 생명이 있고 궁극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자신의 죄에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기를 간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심으로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시인이 죄과로 인하여
고난에 처하였을 때 우매한 악인들로부터 조롱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조롱의 말과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밖에는 없음을 시인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입을 열지 않고
잠잠히 있음이 주께서 자신의 고난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징책을 자신에게서 옮겨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의 징책으로 인해 자신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탈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징책하실 때 사람이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므로 참으로 사람은 허사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을 거두고 명예와 부와 권세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징책 앞에서는 쉽게 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인생의 하는 일이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인생의 하는 일들이 가치마 있으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3)
회복을 구하는 기도 (12-13절)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또한 자신의 눈물을 보시고 침묵을 깨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시인은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모습은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생사를 걸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침묵을 깨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시인과
같이 온 마음을 쏟아 놓는 간절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적인 응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주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자신의 모든 열조 같다고
말했습니다. 객과 거류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객과
거류자는 본토인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듯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열조와
같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살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들의 일생은 나그네의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 속에서
생명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시인도 열조를 돌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용서하사 자신의 생명이 끊어져 죽기 전에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징책을 받을 때 인간은 몸과 마음이 약해집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구한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강건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실 때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영혼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육을 주관하시는 주권자로서 성도에게 영육간의 강건함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결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도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룀으로써 환난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호소하는 성도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며 언제나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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