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시편 42편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
1. 시작 기도: 우리의 소망이요
도움이 되시며, 생명이요 찬송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우리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오니,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원수들의 압제와
비방을 막아주시고, 깊은 웅덩이에서 끌어올려 주옵소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도하며 찬송케 하옵소서. 겸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통 533장)
www.youtube.com/watch?v=w8fcx7zEenw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조롱하는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였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비난 소리에
아파하며 낙망할 때에 시인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낙망 중에 주를 바라보는 것만이
회복과 승리의 길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갈망함 (1-5절)
2) 낙망 중에 주를 기억함 (6-9절)
시인은 영혼이 낙망되므로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들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 곳에서 주를 기억할 때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자신의 영혼을 엄몰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자신에게 닥친
환난이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았음을 의미합니다. 강과 바다의 물결과 파도같이 환난이 자신을 엄몰하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극도의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낮에는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자신이 찬송을 부르며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극도의 슬픔과 낙망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낙망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의 인자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는 솔직한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고백한 것은 시인의 탄식과 간구가 하나님께 항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는 철저한 믿음에서 나온 구원의 호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니 하루 속히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3)
낙망 중에 주를 바라봄 (10-11절)
시인은 대적들의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비방이 자신의 뼈를 찌르는 칼같이 고통을 준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고통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경건한 자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훼방하는 악인들의 말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악인들이 무엇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 계시며, 권능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낙망하는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해하느냐고 책망하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했습니다. 성도가
고난에 처했을 때 자아 속에는 걱정과 근심에 빠지는 육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담대히 행하는 영적 사람의 생각이 싸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불신앙으로 불안해하는 자아에 대해 신앙적인 믿음의 자아가 충고하였던 것입니다. 시인은 자기 영혼에게 낙망하여 불안해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구원의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환난을 허락하심은 구원의 은혜를 체험케 하시려는
것임을 믿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믿음은 날마다 신앙의 싸움을 행하는 모든 성도가
본받아야 할 신앙 자세입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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