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시편 66편 “고난을 넘어 승리의 간증으로”
1. 시작 기도: 우리의 노래와
찬송이 되시며,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시는 능력과 엄위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우리의 눈이 하나님께 고정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온 마음으로 찬양케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 인내하게 하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사,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고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겸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통
455장)
www.youtube.com/watch?v=nFOQRPCLD5Q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시편 66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역사를 증거하며 찬양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역사와 시인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심으로 구원을 베푸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역사는 공적이든 사적이든지간에 항상 찬송과 선포의 제목이 됩니다.
1)
온 땅이 하나님께 찬양으로 경배하라 (1-7절)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1절)
시인은 자신의 작은 삶의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온 세상의 구원자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El
Shaddai)께 시선을 맞춥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내 문제, 내 통장 잔고, 내 건강에 머물러 있으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시선을 하나님께로 옮기면, 그분의 크신 권능 때문에 우리의 문제는 작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 때문에 대적이 복종하고 온 땅이 경배한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우리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 아닙니다. 창조주, 주관자, 통치자이십니다. 그분의
위엄 앞에 모든 피조물이 복종합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시인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 곧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사건을 언급합니다. 지금 눈앞의 문제 때문에 힘들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과거에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우리 민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찬양은 기분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인식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 새벽, 내 삶의 크고 작은 홍해를 갈라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쁨의 찬양을 회복합시다.
2)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풀무불이다 (8-12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0절)
이 부분은 시편 66편의 핵심입니다. 시인은 이제 자신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가 겪은 시련의 강도는 대단했습니다. 11절에는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시며 무거운 짐을 우리 허리에 놓으셨으며”라고
했습니다. 12절에는 “사람들이 우리의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시며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극한의 모욕과 죽음의 위협을 뜻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과 단련’으로 해석합니다.
‘단련(바한)’은 원어로 '금속을 풀무에 넣어 순도를 높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정금처럼 순도 100%의 믿음을 만드시기 위해 고난이라는 풀무불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이 절망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9절),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십니다.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할
때, 우리가 할 일은 ‘원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불과 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편안할 때 잃어버렸던 겸손, 간절함, 기도의 무릎이 고난 속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고난은 우리를 정금으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입니다. 고난을 해석할 때, 그분을
원망하는 순간 시험에 지는 것이고, 그분을 신뢰하는 순간 정금 같은 믿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금 불과 물 같은 고난
속에 계십니까? 불평 대신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고 계신다”고 고백하십시오. 내가 고난을 피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 고난을 통과할 때 비로소 '풍부한 곳'으로 나아가게 됨을 믿고 묵묵히 주님을 신뢰합시다..
3)
응답받은 기도를 통해 감사로 나아가라 (13-20절)
“내가 나의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며 나의 혀로 높이 찬양한 것이로다” (17절)
단련을 통과한 시인은 이제
‘개인적인 간증’을 시작합니다. 13절부터 20절까지는 시인의 지극히 사적인 예배입니다. 그는 서원했던 것을 갚고(13절),
하나님이 자기 영혼에게 행하신 일들을 간증합니다(16절).
18절은 깊은 영적 통찰을 줍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겪는 침묵의 고난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에 고집스러운 죄악을 품고 있으면 기도의
통로는 막힙니다. 죄악이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 고집대로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뜻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정직)에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확신합니다. 19절: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그리고 마지막 20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 아니하셨도다”라고 선포하며
이 시를 마칩니다. 이것이 고난을 통과한 성도의 최종 결론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찬양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며, 당신의 인자하심(헤세드)을
우리에게서 거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오늘, 단련의 풀무불을 통과한 후 정금이 되어 기도의 응답을 받은 시인처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아직 풀리지 않은 기도의 제목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에
혹시 품고 있는 죄악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회복된 기도의 통로를 통해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합시다.
결론
나의 문제에서 온 땅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이동시켜야 진정한 찬양이 시작됩니다. 고난은 징벌이 아니라, 우리를 정금처럼 단련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알 때 통과할 힘이 생깁니다. 기도의 응답은 마음의 정결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에 죄악을 품지 않는 정직함이 곧 응답의 길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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