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월요일
시편 75편 “하나님의 정한 때와 역전의 드라마”
1. 시작 기도: 우리의 재판장이시며, 온 세상을 정의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게 하시고, 내가 시간을 정하고 내가 판단하려 하였던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가까이
계시는 주님께 부르짖고 아뢰이는, 끝까지 주님만을 바라보는 우리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탄의 계절, 주님께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금 기억하게
하시고, 겸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통
122장)
www.youtube.com/watch?v=-26fxMVGRjY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시편 기자는 흔들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놀랍게도 '불평'이나 '탄식'이 아닌 '감사'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황이 좋아야 감사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상황이 흔들려도, 그 상황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보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편 75편은 아삽의 시로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입니다. 일종의 '공동체적 감사시'이자 '예언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할 것이며, 그
심판은 정확한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선포합니다.
1)
감사의 이유: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1절)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여기서 시인은 "감사하고
감사함은"이라며 반복법을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면, 이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감격에 겨운 고백입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벅찬 감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이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부자가 되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주의 이름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인격'과 '현존'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우리 공동체 안에 거하시며 숨 쉬고 계신다는 사실, 이것이
감사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눈을 비비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다
보면 깨닫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더 큰 축복은, 그
문제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기이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개입, 즉 기적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먼저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가까이 계신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삶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
믿음의 선포가 여러분의 하루를 지배하게 하십시오. 상황을 보지 말고,
상황 속에 개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분이 가까이 계십니다.
2)
주권자의 시간:
정한 기약과 하나님의 기둥 (2-7절)
정한 기약이 있다 (2절) 2절 말씀은 하나님의 직접 화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여기서 '정한 기약'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히브리어로 '모에드(Moed)'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개입하시는 결정적인 시간(카이로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조급하다. 당장 뭔가가 되어야 하고, 당장 악인이 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정하신 시간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초조해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내 손목시계에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계는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1초도 틀리지 않습니다. 악인이 득세하는 것 같습니까?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모에드', 정한
기약이 차지 않았을 뿐입니다.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세상이 요동치고, 사회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떱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마라. 이 세상의 기둥을 붙잡고 있는 것은 정치가도 아니고, 경제인도
아니다. 바로 나 여호와다." 고대 근동에서 '기둥'은 세계를 떠받치는 기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 기둥을 굳게 잡고 계시다는 것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권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4절과 5절에서 오만한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뿔'은 힘, 권력, 자존심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끊임없이 자기 뿔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높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고, 내 힘을 과시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목(stiff neck)"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목이 뻣뻣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6절과 7절의 말씀처럼"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남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높아지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동쪽으로 가서 줄을 서고, 서쪽으로 가서 청탁을 합니다. 남쪽(광야)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합니다. "Promotion comes from the
Lord."(높임은 주께로부터 온다). 인맥이 여러분을 높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펙이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마십시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십시오. 그분이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이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3)
심판과 구원:
여호와의 손에 있는 잔 (8-10절)
8절에는 무시무시한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이 잔은 축배의 잔이 아닙니다. '진노의 잔'입니다. 술
거품이 인다는 것은 발효가 되어 독성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섞은 것'은
취하게 하는 향료를 넣은 것으로 심판의 강도가 맹렬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뿔을 높이던 악인들은 결국 이 심판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찌꺼기까지도" 마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는 남김없이 치러집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그 잔이 바로 이 '진노의 잔'입니다. 본래
우리가 찌꺼기까지 마셔야 했던 그 저주의 잔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마셔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75편의
심판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9절에서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라고 고백합니다. 왜 하필'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아니고 '야곱의 하나님'일까요?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부족하고
흠이 많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자격 없는 나를 택하시고, 훈련시키시고, 결국은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은혜를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심판의
하나님은 동시에 택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 10절은 대반전을 선포합니다. "악인들의 뿔은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스스로 높이려 했던 악인의 뿔은 잘려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낮아졌던 의인의 뿔은 하나님께서 친히 높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세상은 스스로 쟁취하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높여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뿔(자존심,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뿔(능력, 권세)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우실 것입니다.
결론
불안은 내가 재판장이 되려
할 때 찾아옵니다. 우리가 불안해하고 분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시간을 정하고 내가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실 수 있도록 주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순간, 마음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불평 대신 감사와 믿음의 고백을 올려드리고, 스스로 뿔을 높이려 했던 교만함이 있다면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정확한 때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감사하는 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히 때를 기다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뿔을
높이 들어주실 것입니다. 조급함의 기도에서, 주님의 때가
가장 정확함을 믿는 기도로 우리의 기도가 바뀌길 원합니다. 사람을 찾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이 이 땅의 기둥을 잡고 계심을 믿을 때, 흔들리던 우리의 삶의
터전이 하나님의 강한 팔로 말미암아 견고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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