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0일 화요일
시편 120편 “성전을 향한 발걸음”
1. 시작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에도 주님 앞에 예배 드리게 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를 깨워주시고 주님의 말씀 앞으로 초대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말씀을 읽으며, 또 기도의 자리를 통하여서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들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주님께 맡깁니다. 어디에 있든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소리 내서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크를 누리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통 434장)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오늘 본문 말씀 시편 120편의 말씀의 소제목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총 열 다섯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소제목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지방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흩어진 씨앗처럼 살다가 1년에 세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 순례의 길을 가면서 외워서 불렀던 찬양들이 바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1) 내가 머물고 있는 곳(5-7절)
(5절)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또 버지니아 지역에 살고 워싱톤한인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교회이고 성전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저자는 지금 머무는 곳 두 장소를 언급 합니다.
메섹과 게달은 이 두 곳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 도시 지역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였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너무 오래 함께 지내게 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곳은 갈등을 좋아하고, 싸우기를 힘쓰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화평을 원해도 싸우려고 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싸움을 계속 우리에게 걸어서 심기가 불편하게 하고 참다가 참다가 결국에는 함께 동조되어 내 안에 화평은 사라지고 화를 함께 내는 자로 변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없는 메섹과 게달에서 벗어나 주님이 계신 성전으로 다시 걸어가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입술과 혀를 지키는 자 (2-4절)
(2절)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거짓된 말, 남을비방하는 말, 상처주는 말, 속이는 말.
사람의 혀는 보이지 않는 칼과 같습니다.
십계명에서 아홉 번째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가 있습니다.
사실과는 다르게 꾸며서, 남을 속이기 위해 말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모든 거짓에 아비가 바로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과 혀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드신 줄 믿습니다.
또,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험담하는 행위(저주,시기)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생명 존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는 상대방에게 (4절), 전사가 쏘는 날카로운 화살과도 같이 마음 깊숙히 파고 들고, 로뎀 나무의 숯불같이 오랫동안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남는 상처가 되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또 나를 공격하는 자들로(세상으로)부터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입술과 혀에 파수꾼을 세워 순례의 길의 여정이 ‘찬양의 길’이 되어지길 축복합니다.
3) 가해자와 피해자 (1절)
(1절)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화평을 깨는자,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진자로 인해
환난 중에 있는 사람 ‘피해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으니 ‘가해자’가 벌을 받게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 주실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는게 더 큰 문제일까요 내가 환난을 주는 것이 더 큰 문제이겠습니까
차라리 환난을 당하는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왜냐면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지만 우리가 환난을 남에게 가하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나에게 벌을 주실테니 사실 더 무서운 것은 환난을 우리가 당하는 것보다 우리가 환난을 남에게 가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도 가해자가 될 만한 기질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다투고 싶어하고, 남의 평화를 깨고 싶어하는 죄악된 본능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있습니다.
환난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는 것을 더 무서워하고 조심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은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화평을 깨려하고,
그들의 입술과 혀로 거짓과 속임수를 말하며 환난 가운데 우리가 머물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화평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와도 그것을 내버려두기도 하고
입술과 혀로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다른 누군가를 환난 가운데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오늘 다시 주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안에 온전히 머물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펼치기] [파일 일괄 다운로드]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