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6일 목요일
시편 146편 “인생의 방백인가, 영원한
하나님인가?”
1. 시작 기도: 우리의 찬송과
노래가 되시며, 참된 도움이시고 소망이 되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 지난 밤도 눈동자와 같이 저희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호흡을
더하여 주시며, 오늘도 이 아침,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저희들을 불러주시니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오
하나님, 사라질 세상 권력이나 물질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내 인생의 닻을 내리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셔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의 반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소외된 이웃과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통로로 우리 교회가
쓰임 받게 하옵소서. 겸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늘 한날, 우리의 남은 평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
찬송가나 복음성가를(소리 내서 부르기 어려운 분은 속으로) 따라 부릅니다.
(아래 유튜브 링트를 누르시면 찬양이 나옵니다)
새찬송가 438장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통 495장)
www.youtube.com/watch?v=jLuhZ5o_yUM
3.
본문 말씀 주해와 적용
시편 146편은 '할렐루야 시편'(146~150편)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찬양시입니다. 인생의 의지처를 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길 때 비로소 시작되는 참된 복을 노래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그 선택의 중심에는 항상 '누구를 믿고 따를 것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편 146편은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결단을 촉구합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인생을 의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라는 외침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이 찬양은 고난이 없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의지할
곳 없는 세상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깨달은 자의 고백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시선이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1) 인생의 한계와 찬양의 결단 (1-4절)
1절부터 4절까지는 인간의
유한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 대안으로 평생의 찬양을 선포합니다.
"나의 생전(Life)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2절) "귀인들(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3절). 아무리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 보여도 사람은 '도울 힘'이 없습니다. 사람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가 가졌던 모든 화려한 도모(계획)가 당일에 소멸됩니다(4절). 많은
사람이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고, 사람의 줄을 잡으려고 에너지를 다 쏟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소멸될 것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진짜 지혜는
도울 힘이 없는 사람에게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돈, 권력, 인맥이
우리 인생의 방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영혼의 근본적인 갈증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있는 '현대판 방백'은 누구(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실망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키우게
되길 바랍니다.
2)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자의 복 (5-7절)
5절은 이 시편의 핵심 요절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천지와 바다와 그중의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6절).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자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고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7절). 그렇다면
왜 하필 '아브라함'이나'이삭'이 아닌 '야곱의 하나님'입니까? 야곱은 실수 많고, 속이고, 도망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스라엘로
만드신 하나님, 즉 '실수투성이인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7절의 '정의'와 '양식'을 주목하여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관념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억울한 자를 변호하시는 실재적인 도움(Practical
Help)이 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소망은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확신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막연한 긍정입니까,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분명한 확신입니까? 오늘 야곱처럼 연약한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자가 아니라 주를 바라는 자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3) 약자들의 보호자, 영원한
통치자 (8-10절)
8절부터 10절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통치 행위를 열거하며 시온의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비굴한 자(굴복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의인들을 사랑하십니다(8절).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십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굽게(망하게) 하십니다(9절).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10절). 나그네, 고아, 과부 등 당대 사회에서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던 이들의
유일한 보호자가 하나님이셨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시인은 9절의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신다'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방백이 되려 하는 자들의 종말을 경고합니다. 참된 지혜는 역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외되고 아픈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 있는 '나그네와 고아' 같은 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결론
인생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다가 그 호흡이 끊어질 때 함께 절망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온전히 붙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과거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도움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고달플지라도 "주님이 다스리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의 삶은 할렐루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세상의 방백들 앞에 당당히 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뒤에는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힘차게 오늘을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펼치기] [파일 일괄 다운로드]
신고하기